공간은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도록 만들고, 우리의 움직임을 지시하기도 하고, 우리의 의견과 결정을 바꾸기도 하며, 우리를 숭고하고 종교적인 체험으로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간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이 출현했고 이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모니터하며 더욱 우리에게 호응해 주는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놀라운 기술과 결합하여 ‘인본주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방법은 무한합니다. 공간을 그 자체의 예술품이나 정치적 선언, 문화적 유물이나 단순한 인간의 삶을 담는 포괄적 용기로 볼 수도 있고, 이러한 접근방식의 사례들은 지금까지의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이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설계와 인간 심리의 연관성에 관한 과학적 이론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유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치형 도어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주고 스트레스를 줄여 코르티솔 분비를 줄여주며 그 결과 심혈관 질환을 낮출 수 있다는 과학적 이론에 따라야 한다면, 설계 전문가들은 도어를 아치형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자유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설계자가 이러한 과학적 이론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공간을 설계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그 중간 지점을 찾아본다고 한들 미온적이고 불가능한 결론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입니다. 설계학적 이론과 과학적 이론과의 조화의 위에는 공간의 실이용자의 적극적인 의견과 비전이 피력되어야만 합니다.
설계자에게 아무런 제약없이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서 공간을 설계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보통은 완성된 공간에 대해 설계자의 비전과 이용자의 의견 단절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계자의 미학적 판단과 보통 사람들의 기호가 크게 어긋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 차이는 교육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공간을 이용하는 것은 설계자가 아니라 이용자인 것이므로 그 공간이 설계자의 예술 작품으로써의 가치로 여겨지거나 설계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이용자의 부족함으로 책임이 전가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공간은 그림이나 영화, 음악과는 달리 완성된 순간부터 수명을 다할 때까지 공간의 기능 즉, 이용자의 공간 이용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긍정적인 기여를 할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르꼬르비지에의 철저한 설계 철학에 따른 공간들은 현대까지 계속하여 기계처럼 아류작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르꼬르비지에나 그 아류작들이 이용자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그 원인으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의 우선 순위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설계학적 원리로만으로 공간을 만든다면 인간의 신경계의 원시적 배열을 무시한 단절된 방향으로 나아가버리고, 과학적 원리만으로 공간을 만든다면 융통성 없는 해법만 제시하는 권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즉, 가장 좋은 공간은 이용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이며, 설계학적 이론과 과학적 이론은 이용자의 전후 맥락과 라이프스타일 등을 고려하여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이용자는 전문가들의 의도를 경청하고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밝혀진 정보들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를 올바르고 전문적으로 돕기 위해 이용자의 환경에 대한 반응이나 생리 반응(심박수, 체온, 생활 패턴 등)을 데이터화하여 분석하고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빠른 시일내에 이용 가능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