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관점

스탕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 아름다움의 관점도 다양하다.”
나라마다의 선호도가 다르고, 개인의 취향 또한 다릅니다.
그리고 매년 새로운 트렌드가 발표되듯, 사회의 취향도 변하고, 개인 역시 사회 구조 및 심리 상태 등에 따라 계속하여 변화하게 됩니다.
따라서 시대,연령대,성별 등을 아울러 모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현재의 심리 상태로 아름다움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관점은 현재 우리에게 결여된 것을 갈망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예술 작품, 건축물, 인테리어, 의류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닮고 싶은 요소가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술 작품, 건축물 등을 만든 창조자 역시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힘겨운 인생으로 인해 많은 것이 결여된 채 최고조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굶주린 예술가들이 걸작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흐트러짐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미니멀리즘 공간에 쏟아지는 햇빛을 보고 감동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봤을 때,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결여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상류층들조차 폭력과 질병에 시달렸으므로 금박이 발린 벽이나 화려한 꽃장식을 선호하였습니다. 그것들이 궁핍과 타락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해주리라 느꼈을 것입니다.
18세기 말 발달된 기술 속의 유럽 상류층들은 지나치게 안전하고 체계적인 사회로부터 벗어나 꾸밈없는 의류, 건축과 실내, 전원 생활 등을 선호했습니다.
현대의 선진국 역시 체계적인 사회와 풍요로운 삶, 격식을 차리는 틀에 박힌 사회의 영향으로 인해 자연스럽고 거칠며 본질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그들의 거친 회벽이나 콘크리트 블록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자연적인 것에서 가장 멀리 간 나라는 때 묻지 않은 현상들과 접촉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장 강하게 느낄 것이다. 프랑스가 그런 나라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한 왕비는 농촌에서 소 젖 짜는 광경을 즐기며  주말을 보내곤 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개인에 따라 취향은 또 다르게 나타납니다.
르꼬르비지에의 군더더기 없는 콘크리트 입방체 건축물의 거주자들은 일부러 지붕과 창문을 달고 꽃무늬 벽지를 발랐습니다. 일에 지친 거주자들이 자신의 결여된 부분들을 집에서 환기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특권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찾아 어둡고 빈티지한 자재로 대충 지은 듯한 집에 살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렇듯 사회와 개인의 심리 상태에 따라 아름다움의 관점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디자인 트렌드나 인테리어 노하우 등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선호도에 불과하므로 상업적 지표로써 활용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현재의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존중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